용하다는 소문에 이끌려 찾아간 동네 철학관
며칠 전부터 마음이 좀 뒤숭숭했다. 딱히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데, 그냥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가끔 막막해질 때가 있지 않나. 남들은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있는 기분. 그래서 결국 참다못해 회사 근처에 꽤나 용하다고 소문난 철학관을 예약했다. 사실 인터넷에서 사주 궁합 사이트나 간단한 테스트는 몇 번 해봤지만, 직접 사람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라 은근히 긴장되더라. 예약금으로 5만 원을 입금하고 나니, 이제 진짜 뭘 듣게 되려나 싶어서 갑자기 손에 땀이 났다.
좁은 방 안에서 마주한 낯선 분위기
예약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앞 사람 상담이 길어졌다. 대기실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아주 좁은 공간에서 기다리는데, 벽에 걸린 낡은 달력이랑 향 냄새 때문인지 괜히 더 긴장됐다. 한 30분을 더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들어간 방은 생각보다 더 좁고 투박했다. 선생님은 인상이 생각보다 평범했는데, 앉자마자 생년월일시를 묻더니 종이에 한자랑 알 수 없는 기호들을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사실 내 사주가 뭔지, 하락이수 같은 전문적인 용어를 써가며 설명해주셨는데 솔직히 절반은 잘 못 알아들었다.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과 현실의 괴리
상담 중에 결혼운이랑 직업 상담을 중심으로 물어봤다. 나름 인생의 중대사라고 생각해서 꼼꼼히 물어봐야지 다짐했건만, 막상 앉으니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선생님은 내 사주에 역마살이 좀 끼어 있어서 한곳에 오래 머물기 어렵다는데, 그게 지금 내 직장 생활이랑 묘하게 겹쳐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어디 가면 밥은 굶지 않겠다’는 말은 위로가 되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뻔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1시간 정도 상담을 받았는데, 10만 원이라는 돈을 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그래서 내일 당장 내가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들
철학관을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훅 불어오는 바람이 꽤 차갑게 느껴졌다. 아까 들었던 말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올해 가을쯤엔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문장 하나뿐이었다. 이게 진짜 운명인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상담 내내 ‘이게 정말 맞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다가도, 또 힘든 일이 생기면 다시 또 찾아오겠지 싶어서 씁쓸해지기도 했다. 상담 직후에는 뭔가 다 해결된 기분이었는데, 막상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오니 다시 일상 그대로다. 3억 마리 정자를 언급하며 셋째 운이 터졌다고 자랑하던 기사를 우연히 봤는데, 누구는 운이 터지고 누구는 아직도 이렇게 운세 하나에 일희일비하나 싶어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운세라는 건 결국 해석하기 나름인가
친구한테 전화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다 부질없다고 웃더라. 하긴 나도 그 친구가 사주 보러 간다고 하면 똑같이 말했을 거다. 근데 막상 마음이 허할 때는 이런 이야기라도 들으며 중심을 잡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손 없는 날을 챙기고 이사 날짜를 고민하는 마음이나, 이틀째 똑같은 꿈을 꿔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마음이나 다 비슷한 불안함에서 시작되는 거 아닐까. 1시간 동안 10만 원을 쓰고도 뭔가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이 찜찜함이 사실은 상담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정답을 바라고 간 게 아니라, 그냥 누군가 내 인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길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당분간은 사주 사이트 같은 건 좀 멀리하고, 일단 지금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하나씩 처리해보려고 한다. 내 운명이 진짜 그렇게 정해져 있다면, 조금 덜 걱정해도 괜찮겠지.

역마살 때문에 걱정이 되네요. 저도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고민을 자주 해요.
손 없는 날 고민하는 마음이랑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사주를 보면서 느꼈던 찜찜함이, 상담 자체가 불안한 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롭네요. 마치 텅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하는 것 같았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