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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꾸라는 말 한마디에 꽂혀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친구의 무심한 권유로 시작된 일산 점집 방문

요즘 들어 회사 일도 눈에 띄게 안 풀리고 인간관계에서도 알 수 없는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싫고 밤에는 온갖 잡생각에 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주변 지인들에게 넋두리를 자주 늘어놓게 되었는데, 지난주에 친한 대학교 동기 녀석이 자기가 아는 곳이라며 신점추천을 해 주었다. 평소에 사주나 운세 같은 걸 아주 안 믿는 건 아니지만 내 손으로 예약까지 해가며 찾아갈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그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덜컥 예약을 잡았다.

위치는 일산 동구 백석역 근처의 빌라가 빽빽하게 밀집한 골목길이었다. 차를 몰고 갔는데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일방통행로였다. 빌라 1층 주차장은 이미 입주민 차량으로 꽉 차 있었고 골목 양옆으로도 틈이 전혀 없어서 주변을 세 바퀴나 빙빙 돌았다. 결국 땀을 뻘뻘 흘리며 근처 어린이공원 옆 공영주차장에 겨우 차를 대고 10분 넘게 걸어서 걸어가야 했다. 빌라 공동현관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묘하게 머쓱하고 망설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반 가정집 같으면서도 묘하게 이질적이었던 대기 공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는 리모델링을 거친 깔끔한 30평대 빌라 거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특유의 진한 향 냄새와 거실 구석에 놓인 커다란 대나무 화분 때문인지, 일반 가정집과는 확연히 다른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오후 3시 예약이었는데 앞서 온 손님의 상담이 덜 끝났는지 방 안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 20분 정도 대기를 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조화며 장식품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니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이곳에 지불해야 하는 복채는 7만 원이었다. 예전에 대학가 길거리에서 재미 삼아 보던 2~3만 원짜리 타로 카드나, 답답할 때 모바일 앱으로 이용하던 분당 요금이 부과되는 고민상담전화 서비스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지출하는 금액의 무게감이 다르게 다가왔다. 속으로 ‘이 돈 값을 해야 할 텐데’ 하는 본전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년월일을 부르자마자 쏟아진 뜻밖의 지적들

대기 시간이 끝나고 방문이 열리며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방 안쪽에는 붉은색과 황금색 비단이 깔린 신당이 차려져 있었고,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무당이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태어난 시간과 함께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종이를 건네받은 그녀는 엽전 몇 개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쇠방울을 몇 번 흔들었다. 짤랑거리는 날카로운 쇠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지는데 나도 모르게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뜻밖의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직장 상사와의 불화나 업무 스트레스 같은 걸 얘기할 줄 알았는데, 다짜고짜 내 이름에 든 한자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사주에 물의 기운이 너무 많은데 이름마저 음침한 구석이 있어서 사서 고생을 하고 귀문이 열릴 뻔했다는 둥, 당장 개명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서른다섯이 넘어서는 몸에 크게 칼을 대거나 재물이 다 새어 나갈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던졌다. 30년 넘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이름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는 소리를 들으니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불쾌함과 불안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진짜 개명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찾아본 정보들

약 40분간의 상담을 마치고 빌라를 빠져나오는데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원래 물어보고 싶었던 올해 이직 가능성이나 연애운에 대한 대답은 흐지부지 넘어갔고, 오직 이름에 대한 나쁜 이야기만 뇌리에 박혀 버렸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핸들을 잡은 손등에 땀이 찼다. 7만 원을 내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러 갔다가, 오히려 없던 병을 얻어온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날 저녁부터 며칠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이름 개명이나 사주 살 타령에 대해 검색하는 데 시간을 다 허비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나와 비슷하게 점집에 갔다가 개명 권유를 받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글이 수두룩했다. 어떤 이들은 무당들이 손님에게 부적을 팔거나 개명 비용을 추가로 받기 위해 쓰는 뻔한 공포 마케팅이라고 치부했고, 또 다른 이들은 찝찝하면 돈이 들더라도 한글 이름을 그대로 두고 한자만 바꾸는 식의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나도 유명하다는 작명소 사이트들을 들락날락하며 예상 비용을 조율해 보기도 했지만, 실제로 직장에 통보하고 주민등록증부터 면허증, 은행 계좌까지 싹 다 바꿀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여전히 찜찜함이 남아 있는 일상으로의 복귀

결국 일주일 정도 골머리를 앓다가 일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법원 절차를 밟는 것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평생 나를 증명해 온 이름을 불쑥 바꾼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었음에도 일상에서 작은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자꾸 그 무당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며칠 전 보고서 제출 기한을 지키지 못해 부장에게 한 소리 들었을 때도, 평소 같으면 그냥 내가 게을렀던 탓이라며 자책하고 끝냈을 일을 ‘내 이름의 기운이 정말 나쁜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귀결시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민을 털어내려 찾아간 곳에서 오히려 씻기지 않는 불쾌한 의문만 잔뜩 묻혀 온 셈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고기나 구워 먹고 친구들과 수다나 떨며 스트레스를 풀었더라면 이런 불필요한 고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문득문득 찾아온다.

“이름 바꾸라는 말 한마디에 꽂혀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에 대한 3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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