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점점 핑퐁 게임처럼 변해가는 게 아니라, 서로 벽에 대고 공을 던지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남편이랑은 5년 정도 살았는데, 예전엔 그래도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최근 들어서는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서로 방어막부터 치는 게 느껴지더라. TV에서 나오는 결혼 지옥 같은 프로그램들을 보면 ‘와, 저 정도로 심각한가?’ 싶다가도 문득 우리 모습을 보면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결국 상담을 한번 받아볼까, 하는 생각까지 번졌다.
예약이라는 첫 번째 장벽
상담소를 검색해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인터넷에 나오는 곳들은 다들 너무 번듯해 보여서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무슨 심리상담사 자격증이 몇 개인지, 아동 심리부터 노인 심리까지 다 한다는 곳들은 오히려 전문성이 느껴지기보다 뭔가 공장형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내가 찾고 싶은 건 화려한 이력보다는 우리 상황을 차분히 들어줄 사람이었는데. 결국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작은 센터에 연락했다. 상담 비용은 회당 12만 원 정도였는데, 처음엔 이 돈이 비싼 건지 싼 건지 감도 안 왔다. 근데 막상 예약 날짜를 잡으려고 전화를 거는 것조차 왜 그렇게 손이 떨리던지. 전화를 끊고 나니 식은땀이 났다.
텅 빈 대기실에서의 어색함
막상 방문한 날, 센터 분위기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차분한 조명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깔려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더라. 로비에 앉아 있는데 우리 말고 다른 부부도 보였다.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스마트폰만 보는데, 그 풍경이 꼭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괜히 시선 둘 곳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 10분 정도 대기했는데, 그 시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상담사분은 인상이 좋아 보이셨는데, 그 친절함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왜였을까. 왠지 ‘당신들은 지금 문제가 있어요’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꼬여 있었나 보다.
쏟아내고 나서도 남는 의문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남편은 자기 방어적인 말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평소엔 입도 벙긋 안 하던 사람이 상담사 앞에서는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얼마나 예민하게 굴었는지 조목조목 따지더라. 나도 지지 않으려고 그간 쌓였던 서운함을 쏟아냈다. 상담사분은 그저 묵묵히 들어주면서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셨다. ‘그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같은. 사실 그게 전부였다. 무슨 대단한 해결책을 내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상처를 줬는지 짚어주는 정도.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상담이 끝나고 나오는데 오히려 머리가 더 무거워졌다.
비용과 시간의 무게에 대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랑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상담소 비용을 내고 나오는 길에 든 생각은 ‘이게 진짜 효과가 있을까’였다. 12만 원이라는 돈이 단순히 상담 비용일까, 아니면 우리의 무너진 관계를 봉합하기 위한 아주 비싼 반창고 가격일까. 문득 우리 엄마 세대였으면 상담 같은 건 꿈도 안 꾸고 그냥 참고 살았을 텐데, 우리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해서 서로의 진심을 억지로라도 꺼내보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이 과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상담사분이 숙제라며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오라고 하셨다. 근데 그게 왜 이렇게 숙제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진심을 담아 쓰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억울했는지 잘 전달할까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게 정말 관계 개선을 위한 건지, 아니면 내가 옳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한 과정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상담을 받기 전보다 오히려 상대방의 단점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 그게 제일 당황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상담소라는 공간에 가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서로를 비난할 근거를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결론 없는 하루의 끝
다음 예약일이 다가오는데, 사실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크다. 가봐야 뻔한 소리를 들을 것 같고, 남편이랑 또 싸울 것 같으니까. 그런데 예약한 건 아깝고, 이미 시작한 걸 중간에 그만두면 우리가 정말 끝장나는 것 같아서 그게 무섭다. 상담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든 건지, 아니면 우리가 상담을 받을 단계조차 넘어서 버린 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오늘 밤도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거실에 홀로 앉아 내일 출근 준비를 한다. 이 과정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시간만 흐르다가 지쳐서 흐지부지될지 솔직히 감이 안 잡힌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상담실 문을 열기 전보다는 조금 더 우리가 각자 혼자라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