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의 막연한 불안함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었다. 그냥 딱히 무슨 큰일이 있는 건 아닌데, 회사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 이직을 결심할 만큼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애매한 상태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뒤적거리다가 무심결에 ‘오늘의 운세’ 같은 걸 검색했다. 예전에 친구가 알려줬던 타로 어플이 생각나서 설치했는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진지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평소엔 이런 거 잘 안 믿는 편인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뭔가 하나라도 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어플 화면은 생각보다 깔끔했는데, 왠지 돈을 써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 일단 무료 타로 메뉴부터 눌러봤다. 19장의 카드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는데, 화면을 터치하는 손끝이 괜히 떨렸다.
무료 서비스와 유료 상담의 괴리
무료 카드를 한 장 뽑았더니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식의 뻔한 문구가 나왔다. 다 아는 이야기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밑에 보니까 10분 상담에 2만 5천 원 정도 하는 실시간 전화 상담 버튼이 눈에 띄었다. 홍카페 같은 플랫폼들이 하도 많아서 비교를 해보려고 했는데, 막상 들어오니 누가 잘 보는지 알 수가 없더라. 수많은 상담사 프로필 사진과 후기가 줄을 서 있었다. 누군가는 족집게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냥 공감해 주는 상담사라고 하고. 10분에 2만 5천 원이면 밥 몇 끼 값인데, 이 돈을 쓰고 나서도 허탈하면 어쩌나 싶어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결제는 하지 않고 다시 창을 닫았다. 뭔가 속 시원한 답을 얻고 싶었던 거지, 검증되지 않은 누군가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증권사 어플까지 점령한 타로
요즘은 주식 어플에서도 타로를 보여주더라. 증권사 앱을 켰다가 ‘오늘의 투자 타로’라는 게 있길래 심심풀이로 눌러봤다. 투자 원칙 어쩌고 하는 메시지가 나왔는데, 이게 내 재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으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됐다. 내가 투자한 종목이 떨어져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카드 그림 하나가 ‘인내심’을 이야기하니까 그냥 헛웃음이 났다. 이런 게 마케팅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보게 된다. 코스콤에서 하는 멘탈케어 박람회 같은 곳에서도 타로 체험을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얼마나 이런 위안에 목말라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사실 타로가 미래를 맞춘다기보다는, 내가 이미 답을 내리고 있는 고민을 타인의 입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거 아닐까.
결국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다음 날 출근해서 다시 모니터를 보는데, 타로 어플에서 봤던 ‘변화’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특별히 점괘가 맞아서가 아니라, 그저 새벽에 내가 했던 고민들이 밖으로 끄집어내진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도 좋겠지만, 결국 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내가 다시 회사 책상에 앉아 메일을 쓰고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게 좀 씁쓸했다. 타로나 사주를 보러 가면 늘 듣는 소리가 ‘본인이 선택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선택이 제일 어렵다. 굳이 돈을 주고 상담사에게 묻지 않아도,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영원히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설픈 결말의 흔적
아직도 내 휴대폰에는 그 타로 어플이 설치되어 있다. 가끔 생각이 많아지면 들어가서 카드 한 장을 넘겨보곤 한다. 가끔은 위로가 되고, 가끔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그런데도 지우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작은 화면 속의 카드가 내 막막함을 잠시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겠지. 어쩌면 나는 타로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내뱉지 못한 속마음을 화면을 통해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고민이 언제쯤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하루는 또 버텨봐야겠다.

밤에 타로 보는 게 이렇게 생각에 잠기다니, 저도 비슷한 경험 한 적 있어요. 회사일에 대한 답답함이 밤에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엔 무료 카드 운세가 좀 뜬금없었지만, 10분 상담 가격을 보니 고민을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