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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주 사이트 결제창 앞에서 멈칫했다

어제 새벽에 갑자기 잠이 안 와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보니 어느새 무료 사주 사이트 몇 군데를 띄워놓고 있더라. 평소라면 그냥 ‘심심풀이네’ 하고 넘겼을 텐데, 요즘 회사 상황이 좀 애매해서 그런지 생년월일이랑 태어난 시간을 넣으라는 칸을 보고 있자니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96년생 쥐띠인지, 아니면 생일이 빨라서 84년생과 겹치는지 매번 헷갈려 하면서도 일단 정확하게 입력을 마쳤다. 사실 예전에 가산사주연구소 같은 곳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땐 그냥 재미로 넘겼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내 상황이 ‘도강무선격’이라고 하면 정말로 배가 없는 상황인 건지, 아니면 내가 노를 저을 줄 모르는 건지 따져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거다.

왜 AI보다 사주 결과가 더 궁금한지 모르겠다

최근에 생성형 AI한테 사주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봤다. 웃긴 게,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데이터 뭉치한테 가장 비과학적인 미래를 묻는다는 거다. 나도 고민하다가 챗GPT한테 내 상황을 요약해서 넣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 사무적이라서 결국 다시 전통적인(?) 사주 사이트를 뒤지게 되었다. 춘강 구박사님이 쓴다는 카드뉴스는 한자 뜻풀이가 섞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해석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분명 한글인데 왜 읽어도 해석이 안 되는 걸까. ‘행유여력격’이라니, 밭을 갈고도 힘이 남는다는 건지, 아니면 쓸데없는 데 힘을 쏟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런 모호함이 나를 안심시키는 걸지도 모르겠다. 명확한 답이 나오면 더 불안할 것 같으니까.

5만 원이나 되는 전화 상담비는 좀 고민이 된다

그러다가 어떤 곳은 10분 전화 상담에 5만 원, 30분에 12만 원이라고 써 붙여놓은 걸 봤다. ‘본연사주타로’라는 곳은 상세하게 직장 이동 시기를 봐준다고 하길래 혹해서 결제창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카드 번호를 누르려니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12만 원이면 당장 이번 달 점심값을 며칠 치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인데, 이걸 써서 듣는 말이 ‘퇴사를 하지 말고 지금 업무를 정리하세요’ 같은 뻔한 조언이라면 너무 허탈할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퇴사 고민보다 어제 밀린 보고서 마무리랑, 며칠째 미루고 있는 메일 회신이라는 걸. 그런데도 자꾸 이런 데서 확답을 얻고 싶어 하는 게 참 우습다.

띠별 운세가 맞지 않을 때마다 드는 묘한 생각

내가 토끼띠였나 돼지띠였나 다시 한번 확인하며 무료 운세 앱을 새로 고침 했다. 오늘 내 운세는 ‘단체나 조직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라고 나오는데, 정작 오늘 점심시간에 내 옆자리 동료랑 메뉴 고르는 걸로 의견 충돌이 나서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게 사주가 틀린 건지, 아니면 내 사주가 너무 강력해서 이런 사소한 충돌쯤은 가볍게 넘겨야 하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예전에 어디선가 보니까 8월 말쯤엔 직장 이동운이 강하다던데, 벌써 28일이 다 지나가고 있다. 이동은커녕 회의실 예약도 제대로 못 해서 쩔쩔매고 있는데 말이다. 내년 신년 운세가 나오기 전까지만 버티면 좀 나아지려나.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은 채로 창을 닫는다

결국 5만 원짜리 결제창은 닫았다. 대신 그냥 메모장에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적어두기로 했다. ‘오후 3시 미팅 준비’, ‘팀장님께 결재 서류 제출’. 이게 사주보다 훨씬 명확한 내 미래의 지도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또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다시 또 사주 사이트를 켜게 될지도 모르겠다. 쥐띠인지 토끼띠인지 다시 검색해 보는 나의 손가락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너 지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하다. 사주 풀이는 분명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왠지 내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누군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이 기분은 대체 뭘까. 오늘 밤에도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아 불필요한 생각만 더 길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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